신앙촌 교육의 시작이 된 신앙촌 유치원

2024. 10. 24. 16:55신앙신보 뉴스

소사신앙촌 시온유치원 제7회 졸업 기념사진(1965.2.23) 왼쪽이 선우혜국 승사다.

 

 

1950년대부터 어린이들의 미래를

밝혀 주었던 신앙촌 유치원

 

 

신앙촌 교육의 시작은 1950년대 소사신앙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소사신앙촌에는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까지 교육기관이 운영되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소사신앙촌을 건설하시면서 교인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세우신 것이었다.

 

소사신앙촌 유치원 1회 졸업생인 故전한나 권사는 생전에 “전쟁 직후 모두가 먹고살기 바빴던 때였는데, 신앙촌에서 유치원 교육까지 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어요”라며, 어려운 시절에도 교육을 중요시했던 신앙촌의 교육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1970년 기장신앙촌이 건설된 후에도 유치원은 계속 운영되었다. 당시 신앙촌 내 공장들이 활발히 돌아가면서 사원과 소비조합원의 수가 증가하자, 부모들이 일하는 동안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1974년, 아이들을 좋아했던 강영숙 권사는 유치원 교사로 자원하여 일하게 되었고, 그 이듬해에는 소사와 덕소신앙촌에서 아이들을 교육했던 선우혜국 승사가 기장신앙촌 유치원 원장을 맡게 되었다.

 

강영숙 권사는 “당시 유치원에는 많게는 80명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신앙촌이 기장군에 속해 있지만, 그때만 해도 양산군이었거든요. 군청에서 문을 닫지 말아 달라고 할 정도로 규모가 큰 유치원이었습니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기장신앙촌 유치원 6회 졸업생 황순정 관장

 

대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황순정 관장(대전교회)은 어린 시절 신앙촌 유치원에서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신앙촌 아이들 대부분이 선우혜국 원장님의 지도를 받았어요. 원장님께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셨는데, 저 역시 원장님께 처음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옆집이 원장님 댁이어서 늘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원장님께서도 제 연습 소리를 다 들으시고는, 어느 날 피아노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칭찬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시절 황순정 관장은 선우혜국 원장을 단순히 유치원 원장님으로만 알고 지내다가, 커가면서 그가 천부교 역사의 산증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전했다.

“제가 유치원에 입학했을 때부터 교복을 입고 다닐 때의 모습, 신앙촌의 크고 작은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모습을 모두 지켜보시고 ‘잘 커 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해주셨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라며, 항상 밝게 웃어주었던 선우혜국 원장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강영숙 권사는 아이들과 재롱잔치를 준비하고, 여름이면 물놀이, 겨울이면 눈사람을 만들던 신앙촌 유치원 시절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유치원은 현재 신앙촌 사원 식당 2층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강영숙 권사는 식당 앞 분수대 자리에 놀이터와 등나무가 있었고, 그 옆으로는 수영장이 있어서 여름이면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했던 일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아이들은 순하고 싸우는 일이 없었어요. 신앙촌에서 체계적으로 배운 덕분인지 싸우면 안 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았던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가끔 유치원에 오셔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도 지켜보시고, 축복도 해 주셨어요. 그때는 작은 상처가 나도 생명물을 발라주면 금방 나았어요.”

강 권사는 유치원에서 일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아 힘든 줄 모르고 일했다고 덧붙였다.

 

 

 

“아이들 교재를 만들고, 1년에 두 번 교사 연수를 받으며 따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연말에는 재롱잔치 준비로 바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기쁘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신앙촌에서 하나님의 축복 속에 자란 아이들은 시간이 흘러 신앙촌의 든든한 기둥으로 성장했다. 현재 교역자, 소비조합, 신앙촌 사원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다고 했다.

 
 

기장신앙촌 유치원 5회 졸업생 김영문 씨

 

유치원 5회 졸업생 김영문 씨(신앙촌 여청)는 “유치원에서 생일 파티도 하고, 간식시간에 선우혜국 원장님께서 피아노를 연주해 주시면 저희는 줄을 서서 빵과 우유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담임선생님이셨던 강영숙 선생님께서 제 머리를 묶어 주셨던 일도요.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강 선생님은 저에게 영원한 선생님으로 남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